나의 이상형 : 안티 이상형에 대하여

쓰고 2015.05.16 01:39

늘 술자리에 모인 남자들은 아무도 내 이상형을 물어보지 않았다.





급작스런 술자리가 파한 뒤, 평소면 30분이면 오는 거리를 지하철 시간이 맞지 않아 한 시간이 넘게 걸린 끝에 도착하여 하루 종일 몸에 쌓인 먼지를 말끔히 씻어내고 침대에 누운 지금, 나는 문득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던 그 질문을 곱씹어 헤아리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비록 아무도 내게 묻지는 않았지만, 그 논의가 동승한 남자들의 테이블에 오른 뒤부터 나는 쭉 그 대답을

한참이나 고르고 있었다. 


막상 그 당시엔 끼어들지 못하고, 집에 와서 이렇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아무도 모르는 블로그에 작성하는 것은 한심한 넋두리이거나 혹은 한풀이일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지 않은가? 조금 전의 상황으로 시계를 돌릴 수만 있다면 뭔가 속시원히 할 얘기를 할 수 있었을 것만 같은 그런 마음 갑갑한 순간.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에 그저 속으로 '내가 그 상황에서 내 놓을 수 있었던 가장 완벽한 답'을 나 혼자 완성해가는 끊임없는 생각의 꼬리를 경험해 본 적이.


만약, 다시 조금 전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누군가 내게 내 이상형이 누구냐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나이가 되면, 이제는 '이상형'이라는 말이 조금은 의미없게 느껴지게 된다. '이상형'이라는 단어에는 '이상적(ideal)'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무언가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이상을

끊임없이 바라고 추구하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상형'이라는 말은 '이 세상 어딘가에 나를 위한 완벽한 반쪽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가진 자들에게 의미있는 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나에게는 '이상형'이라는 단어가 의미가 없다. 나는 이제 남자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기 보다는, 내가 그 사람의 어떤 점을 견딜 수 있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나를 위해 마치 준비된 듯이 세상에 태어나고 길러진 존재는 아무도 없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기 위해 태어나 자란 존재가 아니듯이, 이 세상에 오직 나의 행복을 완성시키기 위해 태어나 자라온 존재는 없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나는 나와 살 수 없다.

나 조차 나를 모시고 견디면서 살 수가 없다는 말이다.


주철환 PD의 책 『오블라디 오블라다』 에선 이런 말이 나온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금석은 '이 사람과 결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가늠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어느 선까지 불해해지는 것을 참을 수 있는가'를 측량하는 게 옳다."


나 또한 그렇다. 결혼까진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남녀 관계에서 내가 보는 점은 '내가 이 사람의 어떤 것까지 견딜 수 있을지'이며, '이 사람은 나의 어떤 면까지 참아줄 수 있을 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성을 볼 때,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보다는 내가 상대의 어떤 것을 견딜 수 없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런 나의 이상형은 소위 '안티이상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조건이 너무 많아지면 굉장히 '까다로운 여자'가 되게 되므로, 조건은 비교적 간단해야 한다. 


그래서 정리해본 나의 안티 이상형은 아래와 같다. 


1.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2.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다 (= 인간과 완벽한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없다)

3. 자신의 건강과 인생을 방치하지 않는다.



위 내용에 해당하는 결격 사유가 없다면, 나는 어떤 남자든 '남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게 될 지는 결국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태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상형이라고 떠들어봤자 내게는 의미 없는 일일 뿐이다.


그렇지만 굳이 내 이상형에 대해 궁금해 하고 물어본다면, 나는 나만의 '안티 이상형'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또 다시 설명할 수 밖에 없으며, 똑같은 대답을 내어 놓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근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역시 얘기하지 않길 잘했다 싶은 건 왜일까.




오블라디 오블라다

저자
주철환 지음
출판사
토트 | 2013-12-13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삶이 버거운 당신도 미소 짓게 만드는 언어의 연금술사 주철환 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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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그 때의 그녀는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쓰고 2015.05.12 22:07





의 어머니는 열아홉에 나를 낳았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나를 매우 싫어했으며,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항상 나를 괴롭혔고, 남자들 앞에서 내 존재를 숨기고 싶어했으며, 나를 증오하고 저주함으로써 자신의 잃어버린 젊은 날들을 후회했다. 

자신의 젊음을 누릴 기회를 앗아가 버린 나이 많은 남편에 대한 증오를 딸인 나에게 풀곤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매우 천진한 어린 사람이기도 했다. 

밖에서 만나는 모두가 그녀를 밝고 사랑스럽다고 여겼으며, 남자들은 어린 그녀에게 거침없이 호감을 표시하곤 했다. 심지어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데도. 

그녀는 그럴 때마다 묘한 승리감에 차서 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거봐, 아무도 나를 애 엄마로 안 보잖아. 누가 나를 애 엄마로 보겠어? 앞으로 나랑 같이 밖으로 나올 때는 나를 '이모'라고 불러. 어차피 내가 니 엄마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테니까."

버스정류장에서, 수영장에서, 길 위에서.

그런 식으로 그녀는 내가 옆에 있을 때조차 스쳐지나가는 모든 남자들과의 만남을 즐겼다. 


그녀가 나를 떠난 후, 가끔 그녀의 그런 행동들을 곱씹어보곤 했다. 그녀가 나를 떠난 8살의 어느 날부터, 그것은 항상 내 머리속에 자리하여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풀어야 할 숙제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20대 초중반까지 내게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묘한 수수께끼와 같은 감정이었다.


내가 그녀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은, 그녀가 나를 떠났을 때의 나이(27세)가 되어서였다. 

나는 그 때부터 조금씩 그 당시의 그녀가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그 때서야 비로소 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그녀의 당시 시간과 비교해 볼 수 있었다. 


27살의 나는 뒤늦게 찾아온 첫사랑에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을 빼고는 꽤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내 명의로 된 차와 집도 있으며, 그리 많은 월급을 주진 않지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서 꽤나 든든한 자리를 꿰어차고 있었다. 


호주에서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고, 인도에서 성지순례와 자원봉사를 했으며, 이탈리아어를 전공하여 현지에서 잠시 살아보기도 하였다. 


'해 보고 싶은 것은 이제 다 해봤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 생각이 들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19살에 임신하여 나를 낳고, 27살이 될 때까지의 그녀의 삶을 생각했다. 

늘상 그녀가 내게 하던 말대로, 그녀의 뱃속에 덜컥 나란 존재가 자리잡지 않았다면 그녀가 그 8년 동안 할 수 있었을 수 많은 일들을 생각했다.


나와 같은 나이에 결혼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숙제를 이뤄내고, 이혼이라는 짐까지 등에 짊어진 채 홀연히 집 밖을 나선 그녀의 삶의 상상할 수 없는 무게감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다. 

내가 그녀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나는 잠시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므로. 

그녀가 나를 버리고 갔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결국 그녀 자신의 삶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불행한 삶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언젠가 '한 번 사는 인생'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녀는 그 순간을 느꼈고, 선택했고,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렀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그녀의 모습,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울면서 밖으로 나서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지금의 나보다도 두 살이나 어리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나보다 한없이 커 보이며, 삶의 모든 문제를 거침없이 결정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을 만한 '해결사'로 보인다. 



그러나 내 나이가 되니, 선생님들도, 의사들도, 엄마들도, 나와 동년배이거나 나보다 어린 사람이 되어간다. 

이렇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만약 언젠가 다시 엄마를 만나면, 당신의 선택을 이해하노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8년을 희생하여 내 곁에서 보낸 꽃다운 세월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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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 : 톤 다운을 위한 염색에 관하여.

쓰고 2015.05.10 23:05





2010년, 처음으로 갈색 머리로 염색을 했다. 


내내 진한 흑발로만 살아오던 내게 그것은 일종의 비주얼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뿌리머리가 자랄 때마다 두 달에 한 번씩 꼼꼼히 염색을 해 왔으나, 햇빛을 받고 주인의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한 머리카락은 어느새 푸석한 금발로 변해 있었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간과 함께 조금씩 익숙해져 버린 내 모습을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아서 그냥 방치해 두었던 것 같다. 


언제나 조금씩 밝아지는 머리카락 색에 나를 맞추는 동안, 나는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머리색을 단지 관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내가, 머리카락 색을 확 다운시킬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역시 최근 겪었던 이별일 것이다.


이별을 겪은 여자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세레모니는 지극히 상투적인 클리셰이고, 나도 항상 그 전형적임을 비웃어 왔으나, 막상 이것이 내 입장이 되니까 그 행위를 받아들이는 여자의 심정이 너무도 와 닿는 것이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 동안 조금씩 변해왔던 내 모습을 버리고, 색다른 모습의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 


미용실로 향하는 순간, 나에게도 저 클리셰가 어느 정도 작용했음이 틀림 없다. 


머리색을 다운시키는 행위에는 상할대로 상한 머리카락을 조금이나마 건강한 것 '처럼' 보이게 하는 눈속임을 하는 의도도 있었다. 머리색이 어두우면 머리카락이 조금 덜 상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염색이 끝난 후, 거울 속으로 보이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어색하게 매만지며 나는 더 이상 예전의 자연스러운 색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내 머리카락을 애도했다. 


전혀 그럴리 없는데도, 조금이나마 머릿결이 좋아진 것 같은 착각에 머리카락을 한참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집에 와 머리를 감는 순간, 샤워기에서 쏟아져나와 내 머리카락을 통과하여 몸에 흐르는 물이 갈색 빛이 나는 것을 보고 순간 우울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상하지 않은 척 하지만 결국 억지로 덧입힌 부자연스러운 색상은 이렇게 조금씩 천천히 빠져나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게 그 색상들이 다 빠져나간 후, 내게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어떤 색일지 나는 예측할 수 없다. 아마도 염색 전의 밝은 머리카락과, 지금 입힌 색이 적당히 어우러진 어떤 느낌의 상한 머리카락이겠지.


이번 이별이 나에게 남긴 색상이 내게서 다 빠져나가고 나면, 나는 어떤 색의 인간으로 변하는 것일까?


확실한 건, 결코 예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겉모습을 바꾸고, 새 옷을 입고, 쾌활하게 웃으며 아무리 괜찮은 척 가장을 해봐도 그것은 결국 가장일 뿐, 머리카락처럼 상한 나의 본모습 또한 결국 조금씩 벗겨져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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